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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종암동을 아시나요?

 

성북구 종암동 81-188번지 일대 34세대가 뭉쳤습니다. 개운산 앞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입니다. 주변에는 아파트숲을 이루고 있는 재개발 재건축이 휩쓸고 지나간 지 20년이 지난 후입니다. 그간에 주변의 변화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건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이 너무 안온하고 평화로웠기 때문입니다. 낡고 오래된 집들은 조금씩 보수를 하면 충분히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1년. 개운산 아래 채석장이 있던 자리에 터를 잡은 배산임수 단독 주택지가 50년이 되고 보니, 새로운 시대에 맞게 탈바꿈하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들이 모였습니다. 대부분이 아버지가 살던 집이거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 쉬이 떠나지 못했습니다. 편리함을 쫓았다면 주변의 아파트로, 신도시로 이사를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종암동(鐘岩洞)이 좋았습니다. 이 동네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고려대학교 뒷산에 북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어 '북바위'라 하고, 한자명으로 종암(고암)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종암동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에 속했으며, 고종 4년(1867)에 발간된 ≪육전조례≫에 의하면 한성부 동부 숭신방 종암리계로 되었고, 1895년 제도개혁 때는 한성부 동서(東署) 숭신방 동문외계 대종암 · 소종암으로 칭하였다고 합니다.

 

1911년 4월 1일 일제는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를 성내는 5부, 성외는 8면제를 시행할 때, 경성부 숭신면 대종암 · 소종암으로 개편하더니, 다시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종암리가 되었습니다. 헐! 지금의 성북구 종암동 경기도 고양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요.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해 경성부 구역 확장으로 재편입되어 경성부 종암정이 되었고,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제도(區制度)가 실시될 때 동대문구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종암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9호로 성북구가 동대문구에서 분리되어 신설될 때 성북구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종암동은 돈암동, 안암동처럼 바위 암(岩)자가 들어 있습니다. 바위가 많은 동네인 셈이죠. 그러니 개운산이 돌산이고, 좋은 돌들이 많아서 채석장이 되었겠지요.

 

아, 개운산의 유래는 아시나요? 그건 다음 회차에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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